저번 주에 보영 언니가 출근을 안 해서 너무 우울했다. 언니는 12월 31일 자로 회사를 그만둔다. 언니는 12월에 남은 연차를 다 쓰는 중이다. 일하다 잠시 쉬고 싶을 때 밖에 나가 말동무할 마음이 통하는 직장동료가 없어 슬펐다. 저번 주 비가 많이 왔던 어느 날에 퇴근길에 그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시원하게 외칠 대나무 숲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이 휴직, 퇴사 등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언니들이 그렇게 없어져버리니 공허함과 상실감이 오후 3~4시쯤 회사 스트레스와 함께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럴 때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다.
나는 참 아이 같다. 꼬맹이 때 명절에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사촌언니와 신나게 놀다가 사촌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정말 많이 울었다. 재밌게 놀던 언니가 집에 갈 때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퍼서 정말 엉엉 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다 커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서 멀어질 때 눈물이 난다. 펑펑 안 울어서 그렇지 그렇게 울라면 울 수 있을 것 같다. 철이 없는 건지 순수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란 여자.
오늘 언니가 잠깐(?) 출근을 했다. 회사 휴게실에서 언니와 접선했다. 저번 주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눈물이 팡하고 터졌다. 내 나이가 몇 갠데 그렇게 눈물이 난다. 언니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저번 주에 나는 혼자서 회사 스트레스를 푸느라 혼났다. 나는 너무너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적 동물이라 옆에 마음 맞는 친구든 멘토든 누가 한 명은 꼭 있어야 한다. 보영 언니가 말했다. 또 내년에 언니 같은 언니가 있을 거란다. 언니 같은 언니가 있어도 또 떠나가면 어쩌나. 어효.
오늘 언니를 봐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점심에 같이 돼지국밥을 먹고 후식으로 휘낭시에와 카페라떼를 마셨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 언니는 매일매일 할 일이 많다. 할당된 마케팅 글을 써야 하고, 집 청소와 빨래, 두 아이 케어, 독서, 운동 등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언니가 저번 주에는 좀 많이 쉬었다고한다. 다행이다 싶었다.
쉬는 것도 참 중요하다. 쉬는 법도 잘 배우고 익혀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원하는 게 있을 때 그걸 죽을 때까지 원할 순 없다. 원하는 걸 이루고 난 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쉼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적절히 잘 쉬고 놀아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끊임없이 건강하게 이상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
조직을 떠나 더 치열하게 살 언니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회사를 떠나 추월차선을 달릴 언니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팀장님이 오늘 저녁에 만날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어 아이템을 고민하고 계셨다. 내가 고래사어묵 선물세트를 추천했다. 팀장님이 옳다쿠나 하셔서 고래사어묵 사장님께 연락을 해 아주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물세트를 2개 구입했다.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는지 구성을 잘해주신 듯하다. 감사하다. 고래사어묵 가게가 있는 롯데백화점까지 걸어갔다. 회사에서 롯데백화점까지 한 10분 걸린다. 사장님이 포장을 어마무시하게 멋지게 해 주셔서 무슨 한우선물세트 부피만큼 컸다. 나는 오뎅이라서 가벼울 줄 알고 맨손으로 걸어갔는데 2개 들고 오다가 팔이 나갈 뻔했다.
팀장님 차를 아들이 취직을 하면서 가져가는 바람에 차가 없으시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조심스럽게 약속장소로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나는 원래 업무시간 외적으로 부당한 지시를 할 경우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MZ세대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은 사람이 너무 좋은 관계로 맷돌 굴릴 새도 없이 OKAY했다.
오늘 팀원 중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너무 일이 많아 허덕거리길래 옆에서 좀 도와줬다. 나는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태라 여유가 있었다. 그 오빠는 평소 정말 일을 열심히 하고 나와 아주 친한 사이다. 약아빠진 그렇고 그런 동료였으면 바쁘든지 말든지 별 상관 안 했을 건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해주고 싶다.
오늘은 정말 무사한 하루였다. 하루가 무사해서 그런지 부정적인 감정이 1도 생기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그리워하던 언니를 만났고 팀장님과 동료 오빠를 도왔다. 재밌는 날이다. 보람 있는 날이다. 내가 나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런 날이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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