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2022.10.02.(일) 15:40 고등학교 때 추앙했던 친구 '롱'

안동 사는 롱이가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롱이는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친구다. 이번 주말에 친정 김해에 왔다고 창원에서 만나잔다. 두려웠다. 4살 딸, 7살 아들을 키우는 내 친구와 미혼에 직장 생활에 찌든 내가 대화가 통할까? 피로감이 몰려왔다. 만나자는 말에 카톡 1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4시간 넘게 답장을 하지 않다가 용기를 내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내 친구 롱이를 거의 4년만에 만났다. 롱이는 출산 후 육아에 신경 쓰느라 몸이 많이 불었지만 고등학교 때 순수한 그 얼굴 그대로다. 롱이도 내가 그대로란다. 많이 늙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대로라고 해준다. 고맙다 친구야. 내 친구는 정말 착하고 순수하다.
한 번씩 고등학교 때 같이 걸었던 길을 지날 때면 내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나는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내 친구는 언제 어디서 뭘 했는지 기억하면서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나? 그리고 애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과 깨달음에 대해 말해준다.
내 친구는 지금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시때때로 실험대에 오르고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기 새끼 예쁘게 크는 거 보면 행복하단다. 무슨 느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 친구는 진짜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 말해주며, 불행에 대해 서로 경쟁하듯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행복에 대해 말해주는 친구를 만나 신기하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롱이가 시어머니, 남편, 아이들, 요즘 자주 만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정적인 시어머니,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 어두분 면이 있는 남편, 엄마를 이해해주는 착한 딸, 천방지축 날뛰는 큰 아들, 엉뚱한 매력이 있는 예쁜 동네 친구, 캐릭터가 정말 다양하고 각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롱이가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6번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추앙하다'에 대해 말해준다. 드라마 주인공 남자가 술에 절어 있고, 여자 주인공은 그를 추앙했고 남자는 점차 변화한다는 스토리를 들려줬다. 나는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못했을 때 분노를 느끼고 화를 낸다. 추앙하고 있는 그대로 지켜봐 준다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 포인트가 놀랍다. 그리고 뭔가 알듯말듯한 느낌이 든다.
롱이는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갔다. 롱이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 롱이가 만나자고 했을 때 '두려운 마음' 이 뭐 때문에 들었을까? 이렇게 만나면 너무 좋고 또 옛날처럼 서로를 추앙하게 되는데 말이다. 나는 요즘 책에서 지혜를 구한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네? 오늘 행복에 대해, 추앙에 대해 내게 영감을 준 내 소중한 고딩 친구 롱이에게 감사하다.